Perfume(퍼퓸)은 어떻게 메이저 데뷔를 할 수 있었는가?

 

 

Perfume(퍼퓸)은 어떻게 메이저 데뷔를 할 수 있었는가?

- BEE-HIVE에서 도쿠마재팬(徳間ジャパン)으로의 이적과 메이저 데뷔에 관한 이야기[각주:1] -

 

 

 2007년. 아가씨들의  ポリリズム(Polyrhythm)[각주:2]가 인기몰이를 하게 되고 그녀들이 대표적인 테크노팝 유닛이 된 이유에는 대부분 당연히 나카타 야스타카가 만든 음악이 좋았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이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나카타 야스타카의 음악성을 받아주고 그녀들을 인디 아이돌 그룹에서 이렇게 성장하기에 이르기까지 기초를 닦아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녀들이 어떻게 히로시마의 인디 아이돌 그룹에서 도쿄로 상경하여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되었고, 첫 메이저 싱글인 Linear Motor Girl(リニアモーターガール)를 내놓게 되었는지 이제부터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초기 Perfume의 팬들은 여느 아이돌그룹의 팬들처럼 그녀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자신들의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것과 자신들이 있는 힘껏 목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다만 그녀들은 인디 그룹이었기 때문에 그 팬과의 거리가 상당히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그녀들에게서 이러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저희들 이제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저 데뷔 음반제작사는 도쿠마(徳間)[각주:3]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팬들은 불안해합니다. 왜냐면 도쿠마라는 음반회사는 엔카(演歌)나 만드는 회사에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회사가 아이돌의 음반을 제작한다니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고 의심이 갔던 것이지요.


 일찍이 BEE-HIVE 프로젝트에 소속해있던 다른 그룹들[각주:4]은 메이저데뷔를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그녀들은 인디음반회사였던 BEE-HIVE 레코드에서 스위트 도넛(スウィートドーナッツ)을 발매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던 것을 보면 당시 소속사였던 Amuse의 입장을 알 수는 없지만 메이저 데뷔를 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녀들은 2005년 9월보다도 일찍 메이저 데뷔를 할 수 있었습니다.[각주:5] 당시 나카타 야스타카와 작업했던 곡은 3곡으로 '모노크롬 이펙트', ' 스위트 도넛' 그리고 '제니는 기분이 언짢아.'[각주:6]였습니다. 하지만 메이저 데뷔를 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BEE-HIVE 레코드에서 내리 세 개의 싱글을 발매하게 되어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Perfume쪽으로 연락이 옵니다. 되도록 빨리 메이저 데뷔할 대상을 구하고 싶다던 사람은 바로 도쿠마의 제작홍보부장을 맡고 있던 시노기 마사히로(篠木雅博)씨였습니다. "Perfume은 아뮤즈 소속입니다. 전 그 (회사)앞에 Re-Wind Recordings라는 아뮤즈와 Victor가 공동 출자하여 만든 회사의 제작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연락이 닿았던 겁니다. 아뮤즈 내의 3명이 메이저 데뷔를 하고 싶어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것을 상담하게 된 계기가 Perfume을 담당하게 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때가 2004년 9월[각주:7]이지요."


 그는 이미 인디 활동을 하고 있던 그녀들을 알고 있었고 나카타 야스타카와 Perfume의 음악성도 알고 있었습니다. "Perfume은 나카타 야스타카의 사운드 프로듀스아래 BEE-HIVE 레코드라는 인디음반제작사에서 이미 음반을 3장 발표하였습니다. 테크노 사운드와 근미래형 아이돌이라는 컨셉에서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서 썼다시피 Re-Wind Recordings는 아뮤즈와 Victor 엔터테인먼트의 공동출자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1999년에 설립되었으며 주로 길거리 라이브를 추구하였습니다. 길거리 라이브라고 하니 Perfume도 길거리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만 이러한 점에서 그녀들이 그의 눈[각주:8]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하튼 시노기 마사히로는 여러 가수들을 데뷔시키면서 이후 시이나 링고(椎名林檎)​를 데뷔시키고 제작부장으로 Re-Wind에 소속하게 됩니다. 이후 2002년 회사는 해산되고 그는 도쿠마로 옮깁니다. 결과적으로는 Perfume의 도쿠마로의 메이저 데뷔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Re-Wind에서의 경험으로인해 Perfume의 음악성에서 엿볼 수 있는 날카로움을 그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거다!'라는 직감이 일어나거나 확신이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대도 다르고, 제 연배에서 알기 힘든 건 확실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저희가 회의에서 여러가지 의견이 나올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먼저 음악을 들어보기 위해서 하라주쿠나 아키하바라 등에 가서 그녀들의 라이브를 몇 번 보러 가봤습니다." 처음부터 그녀들의 음악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그녀들의 라이브를 보러 간 것은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저희 세대의 가치관만으로 Perfume을 평가해버린다면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결국에는 '이런 음악 재미있으니까 한번 해봅시다.'라고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부 회의에서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시노기씨를 설득했던 것은 처음 Perfume의 치프매니저였던 故나카무라 신이치(中村新一), 매니저였던 이시이(石井), 갓 입사한 야마모토 시로(山本史朗). 이렇게 총 3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설득으로 인해 엔카를 만들었던 도쿠마는 Perfume이라는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지 '재밌으니까'라는 것으로 끝맺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회사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실적을 바탕으로 해석해버리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Perfume의 경우는 테크노 사운드가 특징입니다만, YMO의 테크노 사운드는 요즘 10대들은 모르니까 안 먹힐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들의 생각도 받아들이고 내가 모르는 문화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을 가진 젊은 직원의 후원자가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자 상사의 역할이 아닌지요?" 저는 솔직히 이 부분에서 시노기 마사히로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당시의 부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러한 리더십을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Perfume을 데뷔시켰다는 것에 대해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각주:9]


 "Perfume의 키워드는 '아키바'나 '미래'입니다. 당시 츠쿠바 익스프레스(つくばエクスプレス)개통과 타이업하여 첫 싱글의 제목의 확정이나 몇 가지 사견을 전한 적이 있지만, 종합 프로듀서라는 그런 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맡겼습니다." 여기서 Perfume이 메이저 데뷔를 하는 것이 기존의 아이돌 그룹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대형 기획사의 총괄지휘를 맡는 종합프로듀서아래 진행된 것이 아닌 각 분야의 젊은이들의 집합체로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층쿠와 아키모토 야스시, 코무로 테츠야와 같은 종합프로듀서 총괄아래 진행되는 아이돌그룹과는 달랐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테크노팝이라는 특성상 마이너한 부류로 인식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Perfume이 인기몰이를 하고나서야 그 테크노팝이라는 게 인식이 된 것이지 사실 많은 이들이 원래부터 알고 있던 장르도 아닐 뿐더러 Perfume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디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도쿠마에서도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음반회사도 당연히 영리 목적의 회사이니 인기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느 시대나 히트치는 건 순간적으로는 소수(Minority)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해주지는 않더라도 10명중에 1명이라도 맹렬히 빠져들게 해주는, 그 가치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각주:10] 회사사람들이 모두 인기도에 집착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윗선에서는 그것을 조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소수도 같이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기보다는 흥미가 생기는 이유가 됩니다. 창작자가 재밌는 것을 만드는데에 도움과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지요." 그는 인기와 소수자의 취향(?)이라는 두 가지 잣대[각주:11]를 저울질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기야 중요하지만 그 시작은 소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윗선이 취해야할 방법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구가 상당히 눈에 들어오는데요. 창작자가 만드는 것을 돕고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그것은 당연하잖아?'라는 생각12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쯤해서 보면 그가 나카타 야스타카가 음악을 만들어가는 환경에 대해 이해하고, 그 환경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각주:12] 물론 나카타가 아뮤즈 소속도 아니고 도쿠마 소속도 아니지만 종합 프로듀서의 지휘아래와는 다른 독립된 입장(젊은 이의 열정)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니,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그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각주:13]


 이제와서 보면 왜 오랜기간 도쿠마라는 음반제작회사에 대해 나카타 야스타카가 불만이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음악성을 고집할 수 있었는지 대부분 '안돼!'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이 회사만큼은 대부분 'OK!'라고 해주었는지 이해가 됩니다.[각주:14] 그렇게 보면 Perfume〜Complete Best〜가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제 Perfume은 해체되는거야?'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아~쨩이 '해체라니요?'라고 대답하였는지도 이해가 되는군요. 여하튼 저울질을 지금까지도 잘 해오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돌이에요?'라는 질문에 '아이돌이라니 그런 황송한 말씀을...'이라고 하고, '이게 클럽음악인가?'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팝'같기도 한 게 아리송하지요. 어느 한 쪽으로 쏠리게 되면 다른 부분은 돌아서버리는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지만 나카타의 말마따나 '매번 위태롭다고나 할까요.'라는 게 이 역시도 Perfume이 들려주는 음악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각주:15]

 

 


"음악업계도 바람 잘 날 없고 그렇습니다만 지금에 와서도 정말 인간관계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과의 연결이 좋은 일을 낳는다고 봐야죠. 회사간의 그런 게 아니라 일상에서 개개인의 관계가 큰 흐름을 낳고, 그게 연장이 되어서 히트를 치는 경우도 있어요.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 음악세계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인간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Perfume의 메이저 데뷔까지 도쿠마의 제작홍보부장인 시노기 마사히로는 Perfume은 사람의 연결 사이에서 태어난 프로젝트[각주:16]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먼저 제게 다가와 이야기를 해준 것이고, 제가 그 음악성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을 이해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전 기쁩니다. 모든 시초는 나카무라씨와 이시이씨, 그리고 야마모토씨 세 명의 열정 덕분입니다." Perfume의 메이저 데뷔까지 제일 힘써준 세 명에게 그는 '다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것 뿐'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겸손히 낮추고 있지만서도 Perfume의 첫 메이저 싱글 발매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Perfume은 초등생시절부터 아뮤즈가 발굴하여 액터즈 스쿨 1기생으로 8년만에 드디어 싹을 틔운 셈입니다. 나카무라 신이치씨는 그런 그녀들의 매니저였습니다. 그에게도 이 대히트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있어 지금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아뮤즈의 치프매니저이자 Perfume의 매니저였던 나카무라 신이치씨는 타계한 뒤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팬들도 그가 없었더라면 Perfume이 메이저 데뷔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Perfume의 prima box안에 보면 'Great Dedication to Shinichi Nakamura (1957-2007)'이라고 쓰여져 있어 죽은 그를 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그녀들의 메이저 데뷔까지를 보면 이 부분에서도 Perfume의 인복(人福)이 여실히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관리하는 아이돌 그룹의 메이저 데뷔를 적극적으로 응원했던 사람들과 당장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젊은 열정을 보고 믿어주는 사람을 보면 메이저 데뷔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2005년 9월 21일. 츠쿠바 익스프레스 개통[각주:17]과의 타이업을 필두로 하여 메이저 데뷔 첫 싱글인 Linear Motor Girl (リニアモーターガール)은 발매하게 됩니다. 판매를 담당했던 시노기 마사히로의 말대로 '제5원소'에서 모티브를 삼았으며  '근미래시리즈'의 첫 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오리콘 차트 99위로 마무리됩니다.

 

 

 

  1. 음악업계전문지 Original Confidence의 2008월 2월 18일호에서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2. Perfume 메이저 5번째 싱글. 그녀들이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된 계기를 마련한 곡. 그녀들의 벽이자 그녀들의 거울이라 할 수 있는 곡. 폴리리듬에 관한 이야기는 팬사이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본문으로]
  3. 徳間ジャパン. 현재도 엔카 등 여러 음반을 판매한다. Perfume의 전속계약이 끝나고 난 후 새로이 아이돌 그룹인 '히메큥후르츠'를 데뷔시키긴 했으나 별로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본문으로]
  4. Boystyle의 경우에는 2002년에 메이저데뷔를 하였다. BEE-HIVE 캠영상을 보면 놋치가 보이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영상의 놋치가 풋풋한 건 덤이다 [본문으로]
  5. 원래는 임페리얼 레코드라는 회사에서 데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데뷔를 하지 않게 된다. 당시 아뮤즈는 무작정 인디음반회사인 BEE-HIVE레코드를 신설하여 거기에서 Perfume의 음반을 발매시키고 활동하게 하였다. [본문으로]
  6. 예전에도 썼지만 쥬시후르츠의 '제니는 기분이 언짢아' 또는 '제니는 저기압'이라고 불리우는 노래를 나카타 야스타카가 어레인지한 곡이다. 들어보면 '아키하바라'같은 게 생각나긴하지만... [본문으로]
  7. 약 1년 후에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애초부터 메이저 데뷔를 할 것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상당한 기간이 걸린 셈이다. [본문으로]
  8. 처음부터 길거리 라이브를 주축으로 가수들을 데뷔시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Perfume이 대부분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기에 그녀들의 음악을 들어보고자 그는 그녀들의 라이브공연을 보러 갔던 것이다. [본문으로]
  9. 아랫사람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런 발언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Perfume과 도쿠마재팬이 함께 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세계진출이라는 것만 잘 해낼 역량이 갖추어진 음반회사였다면 아마도 Perfume은 계속 도쿠마재팬에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10. 이걸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을 오타쿠로 만드는 그 무형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1명이라도 맹렬히 빠져든다는 것... 곰곰히 생각해보라. [본문으로]
  11. 곧 나오겠지만 두 가지 잣대는 틀렸다. [본문으로]
  12. 물론 예측이지만, 나카타 야스타카가 손안에서 만드는 아마추어같은 환경에서의 음악작업과 그가 갖고 있는 프로의식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다고 본다. [본문으로]
  13. 만약 종합프로듀서가 있었다면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나카타 야스타카와 도쿠마재팬에서의 Perfume음반작업을 보자면 그가 존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14. 폴리리듬과 관련해 나카타는 그 음악의 방향성에 대해 고집을 부렸다. 한편으로는 그가 고집이 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고집을 받아주는 음반회사를 생각해본다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문으로]
  15. 아이돌, 클럽음악 그리고 대중음악을 모두 아우르는 삼각자의 중심점을 잡으며 지금까지 Perfume이 해오고 있던 것이다. [본문으로]
  16. 인터뷰를 보며 놀랐던 것은 시노기 그도 Perfume을 2008년부터 유닛으로 보지않고 하나의 프로젝트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폴리리듬의 인기몰이를 실감한 그는 그녀들이 아이돌 유닛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에는 과소평가한 것이라 느끼고 이 때부터 준비를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가 준비한 건 다름아니라 각 분야의 젊은 열정을 더 끌어모으는 일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17. 2005년 8월 24일 개통한 지하철이다. 아키하바라와 츠쿠바를 오가며 모두 20개 역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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